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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전쟁 장송곡

‘친구여, 나는 당신이 죽인 당신의 적(敵)이었다네. 캄캄한 암흑 속에서 나는 그대를 알아보았지. 자네는 나를 찔렀고, 나의 숨은 거기에서 멈추었지….이제, 우리 함께 영원한 잠을 자세’.   ‘오, 눈물로 범벅된 이날/ 이날/ 격노의 이날이 세상을 소멸하리라/ 주여, 우리를 쉬게 하소서/ 그렇게 해 주소서’.   지난 2월, LA다운타운에 있는 디즈니 홀에서 전국어린이합창단(National Children's Chorus), 미국 어린이 심포니(American Youth Symphony), 성인 실내악 앙상블 등 세 단체가 테너, 바리톤, 소프라노 독창자 세 명과 함께 벤저민 브리텐 (1913-1976)의 '전쟁 장송곡', opus (작품번호) 66을 공연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 없이 90분간 진행되었다. 합창한 수백 명 어린이와 40여 개가 넘는 갖가지의 악기를 다루는 어린이들까지 대규모 연주회이었다. 앞의 한글로 쓴 시(詩) 구절은 작품의 가사를 이해하기 쉽게 번역해 본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일 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공연은 나에게 뜻깊게 다가왔다. 전쟁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다.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가난을 피할 수 없는 가정에서 자란 나뿐 아니라 6·25 한국전쟁, 월남전쟁을 겪은 1964년 이전 출생한 침묵의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 한국인들에게 전쟁이란 단어는 생소하지 않다. 그러나 그 이후 출생한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에게 이란-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은 이론적으로만 이해되는 역사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사전에는 전쟁이 '혼동하게 하는, 황당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좀 부족한 설명 같다. 전쟁이라는 말의 어원(語原)은 11세기 영국과 프랑스라고 보지만, 전쟁의 역사는 태곳적부터, 세상 모든 곳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인류 역사에 1만개가 넘는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싸움의 이유와 대상, 방법이 시대에 따라 달랐다. 멀리 가지 말고, 1700만 명의 사상자를 냈던 1차 세계대전 (1914-1918)과 1억 명 이상이 희생되었던 2차 세계대전 (1939-1945)을 보자. 1차 대전은 주로 땅에서 이뤄졌고 군인들이 1:1로 싸웠다. 반면 2차대전은 육,해, 공군이 모두 동원되어 탱크와 비행기, 잠수함을 썼고 코딩도 이때 개발하였다. 한 전쟁에서 적이었던 나라나 민족이 다른 전쟁에서는 아군이 되는 경우도 보인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참담하다.   '전쟁 장송곡'은 문학, 음악, 역사를 포함한 작품으로 세계 1차 대전부터, 2차 대전, 그리고 1960년대의 베트남 전쟁을 암시하는 시기를 아울렀다. 벤자민 브리텐은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살상의 비참함과 전쟁터로 떠밀린 젊은이들의 짧았던 삶의 애통함을 듣는 이들의 영(靈)에 고발한다. 의미가 희석된 그들의 죽음과 그들의 영원한 안식을 전능하신 분에게 청한다. 애국이라는 프로파간다를 '오래된 거짓(The old lie: Dulce et decorum est....)'이라고 표현하는 성찰의 작품이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곡이나 가사, 작품 구성이 여러모로 난해하였다. 영국의 전쟁 시인 윌프레드 오웬(1893-1918)이 쓴 9개의 시를 가사(歌詞)로 사용하여 브리텐이 작곡했고, 거기에 모차르트, 비발디 등 몇몇 작곡가의 라틴어로 된 '망자(亡者)를 위한 가톨릭 미사곡'을 골라 합성해서 완성한 것이다. 이 작품은 독일 나치에게 폭격당했던 14세기 건물, 영국의 코벤트리 대성당 보수 공사가 끝난 1962년에 성당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초등학교 때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전쟁에서 우리가 만든 과학의 산물들이 서로를 해치는 도구로 쓰인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지 않았다. 나라와 나라끼리 싸웠던 1차대전이 끝나고 나서, 세상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에 빨려 들어갔다. 세상은 갈렸고, 이념의 싸움, 대리전들이 벌어졌다. 한국,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그것이다.     전쟁이 궁극적인 평화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아이러니를 우기는 정치인들도 있다. 전쟁 때문에 예상치 못한 부를 쌓은 사람들도 있다.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군을  유지하려면 군수품을 공급해 주어야 하고 전시에 대비한 무기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방위산업이다. 이 글을 쓰면서 무기에는 하늘, 땅, 바다, 우주를 커버하는 많은 종류가 있다는 것과 그 섬세하고 치밀한 조작을 위해 들어가는 연구 작업이 방대함에 놀랐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기관(SIPRI)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한해에 3980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가 이루어진다 한다. 세계 10대 무기회사 중에 5개가 미국 회사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러시아 회사들도 10대 회사에 들어가지만, 판매 액수는 미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최근 한국에서도 무기 수출 뉴스들이 발표되고 있다. 한화, 한국항공우주(KAI), LIG넥스원 세 회사가, 합계 약 80억 달러를 벌어들여서, 세계 100대 무기회사에 뽑혔다고 한다.       '전쟁 장송곡'에 출연해 평화를 기도하는 노래로 연주회를 끝냈던 소년·소녀들은 '전쟁 장송곡'의 뜻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방법으로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막막하기만 하다. 전월화(류 모니카) / 수필가수필 장송곡 전쟁 전쟁 장송곡 한국전쟁 월남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2023-05-04

[수필]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아버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 있는 바르셀로나에 다녀왔다. 오래된 아파트의 이층에 머물렀다. 아파트의 길 쪽으로 있는 좁은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디아고날(Av de la Diagonal) 아침 길은 분주했다. 광장 쪽 방향으로 한 중년 남자가 누런색 마닐라 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서둘러 걸어가고 있었다. 짙은 남색 양복에 넥타이 없이, 말끔한 흰 셔츠를 받쳐 입은 남자는 적당한 숱의 반백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있었다. 갑자기 그 남자는 아버지의 환영(幻影)과 겹쳐졌다.     그 행인은 남아있는 듯한 젊음을 갖고 있었고, 그의 걸음걸이는 단단해 보였다. 나를 낳고 나를 기를 때, 아버지에게 잔해(殘骸)의 젊음이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늙은 모습의 아버지를 기억한다.     폐기물처럼 나에게 덤핑 되었던 사진들 속에서 아버지를 우연히 만났었다. 거의 백 년 가까운 세월을 아우르는 흑백 사진들은 이어지지 않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한 사진에서, 아버지는 옛 광화문 시청을 배경으로 팔짱을 낀 편안한 모습으로 웃고 계신다. 사진 뒷 면에는 ‘환도(還都) 후(後)’라고 적혀있다.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 갔던 가족들이 서울로 돌아왔던 때인 모양이다. 옛 시대 사람치고 작은 키가 아닌 중년의 사나이는, 소매를 반쯤 걷어 올린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홀쭉하지도, 뚱뚱하지도 않다. 작고 까만 태의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다.     아버지의 반듯한 이마는 적당히 넓고, 올백으로 빗은 반백의 머리숱은 너그럽다. 부리부리 한 눈, 뾰족한 콧날, 그리고 콧잔등 양미간 부분은 주저앉았다. 어머니는 아버지 코의 양미간, 코 부릿점이 낮아서, 액운이 많다고 자주 넋두리하였었다. 마치 집안의 불행이 아버지의 코 때문인 것처럼 그랬다.     그렇긴 하다. 내가 자란 집안에는 불행한 사건들이 많았다. 아버지의 큰아들이 6·25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사건은 참으로 슬픈 비극이었다. 그의 죽음은 고집스러운 먹구름이 되어, 바람이 불어도 물러가지 않고 늘 해님을 가렸다. 집안은 어둡고, 추운 채로 우리를 둘러쌌다. 거대한 검은 구름은 우리에게 웃거나, 울거나, 불평하는 것은 사치라고 가르쳤다. 뒤돌아보니, 엄마의 바닥이 보이지 않은 슬픔과 우울은 뼛속 깊이까지 스며있는 아버지의 아픔이 소리 되어 나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는 늘 말이 없었다. 남은 우리 형제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나누거나, 비판조차 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늘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디아고날 길을 바삐 걸어가던 그 남자처럼, 아버지는 나날의 생계를 위해 말없이 바삐 걸으셔야 했고, 때론 누런 서류 봉투를 잃지 않으셨을까?   대로인 디아고날 길을 또 다른 큰길인 그라시아 길(Passeig de Gracia)이 대각선으로 가로지른다. 스페인의 복잡한 역사의 일부를 보여주는 80여 년 된 23m 키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원점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광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 사각진 회색 뾰족탑은 내 모국의 역사처럼 민주주의를 이룩할 때까지, 싸우고, 빼앗기고, 포기하고 때로는 항복해야 했던 카탈루냐 지방과 스페인 간의 과거를 잊으라고 선언하는 듯 보인다. 꽃과 관목, 행인이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평화롭다. 노란색이 회색이나 갈색보다 더 많이 섞인 자연석 화강암 옛 건물들은 중앙에 자리 잡은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360도 방사형으로 지어져 퍼져 있다. 광장을 면한 건물의 부분은 중심에서 거리가 먼 곳에 있는 건물 뒷부분보다 좁다.     광장을 면한 한 건물 얼굴에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함께합니다’라는 구호가 쓰여있는 4~5피트 길이의 푸른색 배너가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구호를 중심으로, 배너의 한쪽 편에는 푸른색과 노란색이 위아래로 양분된 우크라이나 국기가, 오른쪽에는 유럽연합(EU)을 상징하는 12개의 노란 별이 원형으로 그려져 있다. 배너의 중앙쯤에는 EU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유럽의 27개 회원국이 EU의 정치 경제 통합체를 이루지만 12개의 별은 참여국 숫자와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고 한다.     올해 2월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발발한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땅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와 그에 비하면 약소하기 그지없는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군인 숫자 135만: 50만)으로 1340만 명 우크라이나인들이 조국을 떠나 피란길에 올랐다고 유엔이 보고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 전쟁의 사상자 통계는 확실하지 않지만, 러시아는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서 9년 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사자의 3배가 넘는 군인을 잃었다고 한다.     미군 3만3600여명과 13만7800여명의 한국 군인을 전쟁터에서 잃은 나의 조국이다. 나는 항상 어머니들, 미망인들, 자식들의 슬픔에 눈을 두었었다. 왜 똑같이 아팠을지도 모르는 아버지들을 보지 못했을까? 미국과 한국의 17만1000여명 아버지들은 내 아버지처럼 아들을 잃고 아파 신음하며 늙어갔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들이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까지, 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또 얼마나 많은 아버지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아버지가 울음을 참고 나날을 견디어 나가야 할 것인가? 나의 아버지처럼. 전월화(류 모니카) / 수필가수필 바르셀로나 아버지 우크라이나 국기 아프가니스탄 전쟁 스페인 카탈루냐

202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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